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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커피만 마실 거예요? (가제)
작가 : 긍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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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커피만 마실 거예요? (가제)

  • 등록일2024.04.09
  • 조회수3433

 


공작님, 커피만 마실 거예요? (가제)




1화

 

“앗. 여기가 어디야?!”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내 메이드 복을 보고 또 새삼스레 놀랐다.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니.‘

 

평소 좋아하던 소설 속에 빙의 된 지 한 달째.

내가 결말까지 보기 위해 사용한 코인이 몇 개인데! 고작 하녀로 빙의되다니!

 

“아악. 내가 쓴 코인만 해도 벌써 내 집 마련은 했겠다!”

 

아침에 일어날 적마다 분해서 외치던 말이었다.

 

벌컥. 쾅.

허름한 방문이 세차게 열렸다.

 

“바이올렛! 얼른 일어나!”

“앗. 클로이.”

 

클로이는 공작가 하녀 중 정보통이자 내 선임이며,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녀는 내 몸 가까이 무언가를 들이댔다.

 

“대박. 향이 너무 좋은데?!”

 

나는 은은한 커피 향에 이끌려 몸을 일으켰다.

 

“대? 대박? 그게 무슨 말이야? 바이올렛?”

“아. 아무것도 아니야. 클로이. 오늘 커피 향 진짜 좋다.”

“바이올렛? 커피를 알아?”

 

클로이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으응.”

“쳇. 펠릭스 씨 나한테만 알려준 게 아니었구먼!”

 

나는 클로이의 물음에 얼버무리면서 대답했다.

클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넘어가는 듯, 다시 나에게 말했다.

 



“바이올렛 말대로 오늘 커피 향이 너무 좋아. 얼른 가서 먹자” 

명량하고 발랄한 갈색 머리 소녀 클로이. 그녀와 나는 성격이 잘 맞았다.

게다가 입맛도 잘 맞아서 나는 클로이와 같이 아침마다 티타임을 하는 게 즐거웠다.

 

“바이올렛. 여유 부릴 시간 없어. 우리 늦었어.”

“뭐가 늦었다는 거야? 평소랑 다른 게 없는데?”

“오늘은 데이비드 공작님이 오시는 날이란 말이야. 빨리 준비해.”

 

클로이는 평소보다 상기된 얼굴이었다. 그 잘나신 공작님이 오늘 오는 날이구나.

 

“그래. 그 재수 없는 공작님.”

“뭐래. 얼굴이 잘생겼으면 다 된다고! 얼굴만 잘생겼나?! 키도 크고! 몸도 좋은걸?!”

“그래. 다 갖췄는데 성격이 참 별로잖아. 그 공작님 덕분에 티타임도 마음대로 못 하네.”

 

클로이는 내 손을 잡고 중앙 거실을 향해 이끌었다.

 

“오늘도 공작님은 잘생겼겠지?!”

“어. 그래.”

 

클로이는 공작가에서 유명한 데이비드 공작님 팬 1호였다. 나는 그 팬 1호의 극찬을 매일 듣다 보니 이젠 데이비드라는 공작 이름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날 지경에 이르렀다.

 

“안녕하십니까.”

 

집사들과 하인들이 넓은 거실 중앙에서 공작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물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우리는 공작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집사장에게 무어라 말하며 지나가는 공작의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공작이 잘생긴 건 인정해.”

“그렇지?”

“응. 우리 아직 시간 남았지? 어서 가서 커피 마시자.”

 

나는 클로이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재촉했다.

주방으로 가니 커피 향이 더 번져가고 있었다.

커피에서 풍겨오는 은은하고, 쌉싸름하면서 달콤한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오! 되게 맛있다.”

“진짜 커피 향도 맛도 죽인다!”

 

클로이가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편 주먹을 보이며 최고라는 표현을 하고 있을 때였다.

 

“거기 누구지?”

 

묵직하면서도 카리스마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우리는 흠칫 놀라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떡해, 어떡해. 바이올렛.”

“왜? 집사장님이셔?”

 

클로이가 나에게 오두방정을 떨며 속삭여 왔다. 이유는 데이비드 공작이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하는 거냐.”

 

공작의 목소리가 더 낮게 들려왔다.

 

“일하기 전 시간이 좀 남아 커피를 마시려고 했습니다.”

“커? 뭐?”

공작은 이상한 단어를 들은 듯이 되물었다.

 

”커피입니다.“

”커피라는 그거.“

 

공작은 우리의 커피를 바라보았다.

 

”향이 괜찮다.“

“한 잔 드릴까요?”

 

데이비드 공작은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공작의 물음에 대답하는 동안 내 옆에 찰싹 붙은 클로이는, 나의 옷소매를 꽉 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너.”

“네. 공작님.”

“서재로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공작은 다시 돌아갔다. 클로이가 내 팔을 짝짝 때려왔다.

 

“어떡해. 너무 잘생겨서 난 한 마디도 안 나왔어.”

 

호들갑 떠는 클로이를 보며 나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래 보여서 내가 다 대답했잖아.”

“꺄아. 너무 잘생겼어. 공작님 얼굴은 볼 때마다 복지야 복지!”

“클로이. 아까 그렇게 말하지.”

“바이올렛도 참. 어떻게 그렇게 말해. 너무 놀라 대답도 못했는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공작의 커피를 따르고 있었다.

 

“오늘 향은 여태 나던 향과는 좀 다른 것 같아.”

 

다정한 말투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루카스! 오늘은 커피야.”

 

주방에서 일하는 루카스. 루카스는 항상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얼굴도 반듯한 훈남형 얼굴에, 말투도 얼마나 상냥한지.

나는 오히려 공작보다 루카스가 더 잘 생겼다고 클로이에게 말했었지만, 클로이는 극구 부인했었다.

 

“안녕. 루카스!”

 

내가 코를 찡그리며 눈웃음을 보였다.

클로이가 장난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클로이가 눈빛으로 장난치는 걸 눈치채고 모른 척 넘어갔다.

 

“루카스는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오늘 먹고 싶은 빵이 있어서 반죽을 미리 해두려고.”

 

루카스는 나를 바라보았다.

 

“바이올렛. 이따가 너도 올래?”

“그래도 돼?”

“그럼. 당연하지.”

 

당연하다는 루카스의 말에 신이 난 나는, 루카스를 더 기분 좋게 하고 싶었다.

 

“루카스가 구운 빵은 항상 맛있잖아! 이따 쉬는 시간에 올게!”

 

루카스는 내 칭찬에 기분 좋은 듯, 미소 지었다.

 

“클로이. 나 이거 공작님 서재에 얼른 가져다드리고 올게.”

“그래. 다녀와.”

 

쟁반에 받쳐 커피를 들고 서재에 가려는데 루카스가 질문을 던져 왔다.

 

“바이올렛. 이번 주에도 광장에 갈 거야?”

“응! 이번 주에는 금요일에 다녀오려고!”

 

루카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나를 바라보며 물어왔다.

 

“같이 갈까?”

“진짜? 같이 가주면 나는 너무나도 좋지!”

 

루카스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볼이 붉게 상기되는 게 느껴졌다. 부끄러워 얼른 고개를 숙이고 서재로 향했다.

 

“광장에 갈 때 같이 갈 사람 없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말해도 돼.”

 

내 뒷모습에 대고 루카스는 말을 이었다.

 

“정말?”

 

내가 뒤돌아서 루카스를 향해 되물었다.

 

“그럼! 난 바이올렛이랑 함께 광장 가는 게 너무 재밌어.”

“고마워.”

 

루카스의 양 볼이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를 의식하자 나도 볼이 상기되는 게 느껴져 서둘러 서재로 향했다.

 

계단을 올라 복도를 한참 걸어갔다. 그리고 서재 문 앞에 섰다. 심호흡하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데이비드 공작님. 바이올렛이라고 합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어.”

 

큰 문을 밀고 들어가니 공작가답다 싶을 만큼 큰 책꽂이가 보이고, 높이 순대로 정렬하게 맞춰져 꽂혀있는 책들.

가지런히 놓인 서류들이 보였다.

 

“바이올렛이라고 했던가?”

“네. 공작님 커피 여기다 내려둘까